6월 초, 타이베이 시내. 나는 루즈벨트 로드를 따라 걷고 있다. 앞으로 6개월 동안 도시 구석구석을 가득 채우 ㄹ습하고 끈적한 공기가 숨 막힐 듯하다. 얼룩진 콘크리트와 외벽은 에어컨에서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가운데 땀으롷 축축하게 젖어 있고, 스쿠터들이 쌩쌩지나간다.

 보기 드문 빈터를 발견하고는 발걸음을 멈췄다. 도시에서 가장 번잡하고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거리 중 하나인 이곳에는 허름한 나무 판잣집 하나만 덩그러니 서있다. 이는 일본식 목조 가옥의 전형적인 모습니다. 81년전, 대만이 아직 일본의 식민지였던 시절, 그리고 이 거리가 미국 제 32대 대통령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기 전에는 이 거리에 수백 채의 나무들이 늘어서 있었다.

내가 머무는 구팅 지역은 예전에는 고테이초라고 불렸으며, 당시 대반에 거주하던 50만명의 일본인 중 많은 이들이 살았던 곳이다. 특히 학자들과 공무원들은 식민지 정부 청사와 타이베이 제국대학(현재의 국립대만대학)이 가까워 이 지역에 많이 거주했다. 무너져가는 벽 너머로 욕실의 흔적을 바라보니, 이곳에 저명한 교수가 살았을 거라고는 상상하기 어렵다. 타일 틈새로 작은 나무 한 그루가 자라기 시작했고, 그 그늘 아래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잠들어 있다.

 곧 루즈벨트 로드 뒤편의 좁은 골목길에 또 다른 목조 가옥이 나타난다 이 집은 고급 레스토랑으로 복원외었는데, 기와지붕과 목조 공조가 아름답게 보존되어있었다. 주인은 이곳이 예전에 대학에 방문한 일본인 교수들의 숙소였다고 말하며, 더위를 식히기 위해 안으로 들어와 음료를 대접해 주었다

하지만 나는 이제 가야만 했다. 더욱 좁은 골목깅의 굽이굽이를 따라가다 보니 뜻밖에도 새로 복원된 다이쇼 시대 가옥들이 모여 있는 단지가 나타났다. 한때 대만은행의 일본인 직원들을 위한 숙소로 사용되었던 이 가옥들은 이제 텅 비어 거의 황량한 모습으로 다음 용도를 기다리고 있었다.

골목 끝에 다다르자 굴링 거리에 도착했음을 깨달았다. 여행 가이드북에는 거의 등장하지 않지만, 이곳은 영화 팬들에게는 순례지나 다름없는 곳이다. 1961년 6월15일 저녁, 16세 소년이 여자친구의 가슴을 일본 번이나 찔러 죽는 모습을 바로 이곳에서 목격했다.. 이 사건은 훗날 에드워드 양 감독의 1991년작 4시간짜리 대작 영화 <밝은 여름날>에 영감을 주었다.

“일본과 8년간 전쟁을 치렀지. 이제 우리는 일본식 집에 살면서 일본 음악을 듣고 있어.” 가해자의 가상 아보지는 궁링 거리의 집, 쇼지(일본식 창문)로 가려진 방에서 가족과 저녁 식사를 하며 이렇게 말한다.

양 작가의 작품속 인물들은 1949년 중국 공산당에 패배한 국민당을 따라 대만으로 피난한 120만 명의 중국 본토 사람들을 대표한다. 그들 중 상당수는 4년 전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항복한 후 급히 떠난 일본 점령군이 남긴 집에 정착했다.

새롭게 도착한 본토 이주민들 중 가장 어린 세대에게는 지정학적 모순으로 점철된 탈식민주의적 환경에서 성장하는 것이 특히 혼란스러뤘을 것이다. 여러 채의 낡은 일본 가족을 지나면서, 한때 그곳에 살았던 세대들이 새로운 환경을 이해하려 애쓰고 벽 속에서 해답을 찾으려 했던 모습을 상상해 본다.

 구링가 아방가르드 극장(일본 경찰서 에서 중국 방송국, 그리고 대만 독립극장으로 탈바꿈한곳)에서 발길을 돌려 난하이로를 따라 걸어 내려간다. 갈색 별돌로 지어진 쇼와 시대 초기의 모더니즘 건축물이 시야에 들어온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웅장한 무도회장 같은 입구가 나타나는데, 식민지 시대의 자랑거리였던 시절은 이미 오래전에 지나갔다. 오늘날 이곳은 국립 228기념관으로, 1947년 중국 굼민당 통치 시절에 발생한 228사건, 즉 대만 대학살에 관한 상설 전시를 관람할 수 있다.

 고가교를 건너니 젠충 남자고등학교에 도착했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메이지 시대풍의 외관과 시계탑은 도쿄역을 떠올리게 하지만 야자수와 장제스 전 총통의 동산은 대만 특유의 분이기를 자아낸다. 더욱 놀라운것은 학생들이 졸업파니를 위해서 장제스 총통을 K팝 아이돌 마왕으로 변장 시켰다는 점이다.

비가내리기 시작해서 나는 서둘러 차양막이 져진 입구 아래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한 노인이 휴대전화로 동상 사진을 찍고 있었다.

“저 사람이 누군지 아세요?” 그가 묻는다.

그가 그 복장에 당황한 것 같아서,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복장과 같다고 말해줬다.

“아니요! 저분은 우리의 위대한 옛 지도자, 장개석 입니다!”

그는 가상의 한국 아돌로 변장한 ‘위대한 전 지도자’의 사진을 계속 찍으며 웃었다.

 우산을 집에 두고온 바보 같은 짓을 저질렀고, 솔직히 말해서 카메라를 들고 학교 밖에서 더이상 시간을 보내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위험을 무릅쓰고 길을 건너 국립역사박물관 주변을 돌아 철물을 통해 타이베이 식물원으로 들어갔다.

 이정원은 한때 일본의 양묘장 이었고 대만에서 가장 오래된 식물 표본관이 있던 곳입니다. 복원된 초기 쇼와 시대의 목조 방갈로는 나무들 사이에 서 있는데, 기와지붕과 널판지벽, 그리고 쇼인 양식의 방들이 습기 찬 정원을 향해 있습니다. 식물학자들은 이제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큰 야생 동물 렌즈를 든 은퇴한 아저씨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우리가 함께 걷는 오솔길 아래는 대만 초기 인류 정착지의 고고학적 유적이 묻혀있다.

 

Photos by Herel Hugh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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